믿음으로 맺어진 인연, 크리스천 메이트
- 사랑의 결정권을 맡기라 사랑이 실패하는 까닭은 우리 힘으로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우리는 “주 안에서 사랑하라”는 말을 익히 들어 왔다. 이 말의 의미를 디트리히 본희퍼(Dietrich Bonhoeffer)의묵상을 통해 자세히 살펴보자.그는 ‘혼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 을 구분해서 설명한다. 1. 혼적인 사랑 내 힘으로 하려는 사랑이다.자기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결국 자신에게 매여있는 사랑,모든 사랑을 동원해서 획득하고 정복하고 지배하려는 사랑,다른 사람의 사랑을 갈망하지만 내가 그 사람을 섬기지는 않는 사랑이다. 2. 영적인 사랑 모든 통로가 예수님 때문에 사랑하는 사랑이다.사랑의 동기, 사랑을 하는 방법,사랑에 대한 결정권까지도 예수님께 있다. 먼저, 혼적인 사랑은 자기 자신이 우상이다.내가 중심에 있고, 상대는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맞춤옷이 되었으면 한다.그러다가 마음대로 안 되면 강요하거나 상대의 삶에 개입한다.이 방법도 실패한다면 분노하고 미워하고 끊임없이 비난한다.즉 상대를 내 욕구를 채워 줄 사업 파트너로 여기는 것이다.그래서 혼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내 원수’를 사랑할 수 없다.사랑의 동기가 ‘나 자신’이기 때문에 내가 기대하는 바가 충족되지 않으면,그 사랑은 끝나게 된다. 그럼 영적인 사랑은 무엇일까?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기 이전에,하나님이 상대를 온전하게 사랑하심을 전제하는 사랑이다.그러므로 내 힘과 방식대로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상대를 목숨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그 사람을 어떻게사랑해야 되는지를 먼저 묻게 된다.사랑의 결정권을하나님께 맡기면서 하나님께 청종하는 태도로 나아간다. 내가 그 사람과 직접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그 사람과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므로 우리의 관계 가운데그리스도가 계신다는 전제 아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상대와 접촉하는 것이다. 즉 그 사람을 ‘중보’하는 태도로 사랑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도움을 줄 때도 내 힘으로 하면 안 되고, ‘중보’를 통해서먼저 하나님께 의뢰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먼저 일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그래서 이러한 사랑에는 구속과 집착이 있을 수가 없다.상대를 가장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직접 그 사람을 도와주실 것이라는믿음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결국 상대의 모습 그대로를 수용하고인정하고 받아줄 수 있는 공간이 생기고, 상대를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다. 본희퍼가 말한 다음 문장을 꼭 음미해 보기를 바란다. “따라서 영적인 사람은 형제와 함께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기보다는 그리스도와 함께 형제에 관해 말할 것입니다.” - 헵시바 中
view more +내적 단장아름다움의 열쇠는 베드로전서 3장 4절에 있다."오히려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고요한 심령인 썩지 않을 것으로 단장하십시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주 귀한 일입니다."이러한 아름다움은 나이가 들수록 더 빛이 난다.잠언 31장 10-31절의 덕스러운 여성을 보면,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아름다운 여성상을 알 수 있다. 그녀를 묘사하는 20개의 성경 구절이 있다.그 가운데 오직 한 절만 그녀의 외모에 대해 언급한다. 주어진 시간의 20분의 1을 육체적 아름다움에 사용하고 나머지 20분의 19를 지혜, 친절, 경건과 같이 하나님이 아름답다고 설명하신 나머지 자질들을 개발하는 데 사용한다면 잠언 31장 10절에서 남자들이 만나고자 애써야 한다고 강조하는 훌륭한 여성이 될 것이다. 잠언 31장 30절에서 솔로몬 왕이 매력과 화려함에 대해 말한 내용을 기억하는가?"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움도 잠깐이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다."잠언 31장 10-31절의 덕스러운 여성을 보면, 아름다운 여성상을 알 수 있다.# 잠언 31장 10-31절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상인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 오며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 여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밭을 살펴 보고 사며 자기의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일구며힘 있게 허리를 묶으며 자기의 팔을 강하게 하며자기의 장사가 잘 되는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며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그는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자기 집 사람들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자기 집 사람들을 위하여 염려하지 아니하며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그의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으며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그는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맡기며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자기의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현명한 기다림 / 잭키 켄달, 데비 존스 공저
view more +'그 사람을 찾는' 것보다 성경의 관점대로 지혜롭게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후자를 택하면 결혼 상대를 객관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하지만 '운명' 은 객관적 평가를 허락하지 않는다. 상대가 내 운명적인 반쪽인지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강렬한 감정에 눈이 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하지만 지혜롭게 선택해야 한다는 성경적 태도를 택하면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활용해 건강한 결정에 도달할 수 있다. 그 결정의 기초는 다음 여러 요인이 되어야 한다.• 성경의 명백한 지침그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리스도인인가?(잠 31:30) 또한, 성경적으로 결혼에 합당한 사람인가?(막10:11~12)• 지혜그 사람은 돈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잠 31:16, 18)열심히 일하는 사람인가?(잠 13:4, 26:13~15)정직하게 사는 사람인가?(잠 13:6, 20, 25:28)그 사람은 말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가, 아니면 격려를 베푸는가? (잠 12:18, 18:21)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걸핏하면 싸우는 사람인가?(잠17:19, 29:8)• 부모와 목사의 조언부모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당신을 더 잘 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부모라 해도 대개 당신이 가장 잘되기를 바란다. 부모의 의견을 적어도 참작은 해야 한다. 또한, 목사를 비롯하여 당신이 존중하는 경건한 사람들과 의논하라. 이 관계가 당신에게 '어울려 보이는가? 혹시 우려되는 요소는 없는가?잠언 15장 22절에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고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고 했다. 내가 가장 존중하는 사람들이 이 관계에 심각한 우려를 보인다면, 나라면 자신이 객관성을 잃었다고 보고 결혼 계획을 일체 보류할 것이다. 내가 연애 감정 때문에 취약하고 어리석어졌다는 뜻이다.• 기도 하나님이 나만을 위해 딱 한 사람을 지으셨다는 개념을 거부 한다고 해서 다음 사실까지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즉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을 구하면 그분은 우리를 누군가에게로 인도하실 수 있고지혜로운 결정을 도우실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순복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지혜의 은사, 공부의 적용, 합리적 이해력 등을 구하고 활용한다. 이 모든 요소와 씨름한다는 게 로맨틱하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로맨스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연애 감정에 빠진 상대와 결혼 하는 것이 매우 지혜로운 경우도 많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연애 감정때문에 결혼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반대로 단지 연애 감정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배우자감들을 아예 무시하는 일도 없기를 바란다.'운명적인 반쪽' soul mate 대신 나는 더 성경적 추구를 제안하고 싶다. 발음은 정확히 똑같지만,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당신은 '동반자 같은 짝' sole mate을 찾아야 한다.-게리 토마스 『연애학교』 中-
view more +성경이 보는 인간의 본질은그것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성경에 따르면 우리의 문제는 옛날에 각자의 반쪽과 갈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분리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통해 하나님과 화목해져야 한다. 일단 하나님과 화목해지면 그분이 우리를 본연의 인간으로 회복시키신다. 결혼은 신기하고 영광스러운 실체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의 정체에 비하면 부차적이다. 천국에는 결혼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마 22:30) 그러므로 평생의 배필을 구할 때 우리는 상대에게 아쉬워 매달리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며 삶 속에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갈 사람을 참을성 있게 구한다.'운명적인 반쪽을 찾아야 한다'는 플라톤의 철학은, 지혜를 저버린 채 나와 상대가 '운명의 만남' 인지를 신비롭게 분별하려 한다. 그런 식으로 해서 잘 맺어지는 사람이 어쩌다 있겠지만, 미련하고 경솔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우선 상대가 내 영혼의 짝이요 운명의 만남인지 어떻게 아는가? 대개 사람들은 감정으로 그것을 분별하려 한다. 전에 없이 서로 전기가 통해야 한다. 하지만 앞에서 이미 확인했듯이 연애 감정은 강렬해 모든 것을 삼켜 버릴 뿐 아니라 수명이 짧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한다. 그분의 인도를 구하려 한 당신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상대에게 홀딱 빠져 있으면 당신의 뇌는 온통 그 사람을 얻고 지킬 생각밖에 없다. 그런 상태에서 과연 하나님의 음성을 능히 분별할 수 있을까?상대의 성품과 참모습과 배우자로서의 적합성을 분별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충분한 시간, 주변의 조언, 건강한 분량의 객관적 자기회의, 돌 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반면에 상대를 '하나님이 택하신 짝' 내지 플라톤의 표현으로 '운명 적인 반쪽' 으로 생각하기는 비교적 쉽다. 직감적 '느낌' 이 들고 옳아 보인다. 다른 대상은 상상할 수도 없다. 내 사람을 찾은 게 틀림없다! 이런 사람들은 성품, 성격적 궁합, 삶의 목표, 바라는 가정, 영적 건강, 기타 중요한 요소들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연애 감정에 취해 결혼하는 사람들은 감정이 사그라지고 관계에 노력이 필요해지면 한쪽이나 양쪽 모두 불현듯 자신의 '실수' 를 깨닫는다. “이 사람은 내 운명적인 반쪽일 수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힘들 리가 없다.”이제 그들은 공황 상태에 빠진다.“내 운명적인 반쪽이 아직도 세상 어딘가에 있을 거야!” 그래서 그들은 한시라도 더 늦을세라 이혼 법정으로 달려간다.하나뿐인 운명의 만남, 진짜 반쪽을 행여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말이다.사소한 이유로 결혼하는 사람은 사소한 이유로 이혼하려 한다. 서글픈 사실이다. 결혼은 평생의 헌신인 만큼훨씬 영속적인 기초가 필요하다. 그 속에 영원한 의미마저 함축되어 있어야 한다. 여기 당신에게 던지는 어려운 숙제가 있다. 배우자를 결정하기 전에 서로가 배우자로서, 그리고 장래의 자녀들의 엄마나 아빠로서 적합한 사람인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게리 토마스 『연애학교』 中-
view more +나는 다음과 같은 옛말이 너무도 진리임을 깨닫곤 한다."행복한 결혼은 이생에서 천국에 가장 가까운 삶이지만, 불행한 결혼은 풍요로운 사회에서 지옥에 가장 가까운 삶이다.”이런 문제의 원인은 대개 두 사람이 목적과 비전도 없이 함께 살려 하려는 데 있다. 바른 목적과 비전이 있어야 둘이 맺어질 뿐 아니라 앞으로 50~60년 동안 계속 서로 사랑할 수 있다.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앞으로 50~60년 동안 당신을 계속 매혹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 위 그 어디에도 없다. 상대가 정말 재미있고 매력이 넘치고 당신이 정말 홀딱 빠져 있다면 그 매혹이 몇 년쯤은 갈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인지라 결국 서로에게 싫증을 내게 되어 있다. 아무리 부유하거나 잘생겼거나 유명한 사람도 이기적이기는 마찬가지다. 한때 안정과 활력을 주던 바로 그 관계가 이제 속박과 죽음으로 느껴진다. 당신도 비전을 공유하지 않은 사람과 결혼하면 결국 똑같은 일을 만나게 될 것이다. 지금 아무리 뜨거운 사랑에 빠져 있다 해도 소용없다.당신의 결혼생활이 영적으로 풍요롭기를 바란다. 활력과 생동감과 친밀함을 낳는 삶이기를 바란다. 부부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평생 좋은 추억들을 가득 채우기를 바란다. 함께 가정을 일구어 가는 기쁨이 넘치기를 바란다. 가정생활은 정말 복된 삶이며 친밀한 부부관계는 정말 놀라운 선물이다. 부부는 인생의 모든 계절을 함께 맞이하고, 함께 자녀를 기르고, 함께 주님을 섬기고, 삶의 재미를 누리고, 상심과 아픔을 견디고, 침체를 이겨내고, 실망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고, 이 모두를 통해 함께 자라간다. 그러면서 놀라운 우정과 친밀감이 깊어진다. 처음의 성적 매력이나 연애 감정은 감히 거기에 비교할 것이 못된다.배우자를 지혜롭게 선택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보상이 따른다. 당신이 그것을 놓치지 않기 바란다. 반대로 미련한 선택의 결과는 너무 고통스럽고 평생 간다. 당신이 그것을 견뎌야 할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이토록 중요한 결정에 주의력과 분별력이 반드시 필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솔직히 당신도 이런 지혜로운 선택을 놓칠 마음 이 없지 않은가? 지금은 미련함을 로맨스로 포장할 때가 아니다.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둔 상태에서 지성을 총동원해야 한다. 하나님의 인도, 성경, 가족, 교회, 분별력 있는 친구 등 모든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 의지와 목적과 지혜를 모두 모아 이 결정에 임해야 한다. 그러면 결혼생활이 만족스럽고 풍요롭고 서로의 영혼을 세워 줄 소지가 훨씬 커진다.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라.“지금으로부터 10년 후에 나는 어떤 종류의 눈물을 흘리고 싶은가? 기쁨의 눈물인가, 아니면 고통의 눈물인가? 내가 원하는 결혼은 나를 세워 줄 결혼인가, 아니면 나를 끌어내릴 결혼인가? 서로 동역하는 연합인가, 아니면 늘 서로 피하며 상처를 주는 관계인가?"-게리 토마스 『연애학교』 中-
view more +“하나님,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인가요?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이 기도에 담긴 진실은 이것이다.“하나님, 저 더 이상 사랑에 실패하기 싫어요. 이별의 아픔을 반복하기 싫어요.”하지만 정작 하나님이 누군가를 데려와 “자, 이 사람이 내가 너에게 예비한 사람이다”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 할 게 뻔하다.“아니, 하나님!!! 그래도 이 사람은 좀 아닌 거 같아요.”사람들은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가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는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랑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다. 사랑은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내가 단순히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넘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이별은 비록 힘들지만 때론 우리를 성숙시킨다. 우리는 이별을 통해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고, 후회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다짐한다. 그렇게 이별을 통해 우리는 더 잘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이별은 우리에게 사랑이 백마 탄 왕자와 공주를 만나는 게 아니라는 현실을 알게 한다. 만약 좋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싶다면 사랑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사랑의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바로 알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하나님은 분명 우리가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내가 좋은 사람으로 성숙해 있지 않다면 좋은 사람을 만나도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줄 뿐이다.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별의 아픔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좋은 사랑을 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별의 아픔을 딛고 더 성장하는 것이다.-조재욱 『보통의 질문들 』 中-
view more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어떻게 서로 사랑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신다. 특히 호세아 선지자에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결혼생활로 가르쳐 주셨다.BC 750년경 북왕국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때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에게 음란한 여인인 고멜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고 명령한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에서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음란한 여인이었던 고멜과 결혼하게 된다(호세아 1:3). 물론 결혼 후에도 고멜은 지속적으로 음란한 생활을 한다. 가정에 충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종종 집을 나가 다른 남자들과 어울렸다. 그러던 어느 날 고멜은 호세아에게 세명의 자녀를 안겨준 후 훌쩍 떠나 버린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창녀가 된 고멜을 다시 데려오라고 명령하신다. 그 명령대로 호세아는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몸값을 치르고 고멜을 다시 데려온다. 호세아는 분명 어려운 결혼 생활을 했다. 아무리 하나님의 명령이라지만 때로는 그만두고 싶을 만큼 괴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호세아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끝없는 것인지 생각했으리라. 그래서 호세아는 한없는 두려움과 뼈가 마르는 듯한 고뇌 속에서도 고멜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사랑을 하거나 결혼할 때 하나님이 그들을 짝지어주셨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려운 순간이 닥쳐올 때면 순간적으로 하나님이 이 관계를 통해 무엇을 바라시는지 망각하게 된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결혼생활을 통해 그분의 사랑을 깨닫기 원하셨듯이 우리의 사랑과 결혼을 통해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 원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놓지 않으시고'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 주시듯 서로가 상대방에게 혹은 배우자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고 매일매일 고백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잠언 28장 25절에 “욕심이 많은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지만, 주님을 의뢰하는 사람은 풍성함을 누린다"고 했다. 당신이 만일 욕심으로 사랑을 시작했다면 그 끝은 다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러셨듯 스스로를 내어주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사랑은 그 사랑이 당신의 가족을 채우고, 이웃을 채우고, 공동체를 채우게 될 것이다. 호세아 선지자는 결혼을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는 '사랑의 학교'라고 생각했다.여기서 호세아의 고뇌가 승화되는 계기가 시작된다. 율법적으로 보자면 그는 고멜에게 여지없이 돌을 던지는 것이 마땅했다. 하지만 호세아의 마음속에는 이미 고멜에 대한 긍휼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고멜의 불행을 안타까워하며 탄식할 정도였다. 호세아에겐 오직 그녀에 대한 긍휼함과 헌신적인 사랑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호세아는 고멜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명백히 발견하기에 이르렀다.“지금까지의 내 삶은 마치 고멜처럼 하나님을 떠나 행음하는 자였었구나.”욕심 가득한 조건만 앞세우는 사랑은 조건이 깨지는 순간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하지만 결국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은 오히려 조건이 생기면 불편해지는 사랑이 될 것이다.-양소영 ·양희욱 『사랑하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것들 』 中-
view more +“운명의 짝이 있을까요?" 연애에 관한 질문들 중 빠지지 않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하나님은 결혼할 사람을 인도해주시고 운명은 네가 만드는 것이다.”하나님은 우리 결혼에 대해 두 손 놓고 계시는 분이 아니다.“주님 도대체 왜 이러세요? 저 언제 결혼시켜주실 거예요?”라는 기도에 “앗, 그간 내가 너무 바빠서 깜박했네. 미안~” 이러시지 않는다. 그 분은 나보다도 더! 내 결혼과 배우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시는 분이다. 눈치 채지 못했을 뿐 꽤 많은 사람들을 후보자로 선정하여 주변 에 두시고, 눈앞에 왔다 갔다 하게 하셨다. 내 마음의 한계가 그 사실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인생에 후보자들을 등장시켜주신다. 그런데 단지 내가 원하는 상대방이 아니어서, 내가 생각한 결혼이라는 그림에 안 어울려서, 내가 기대한 설렘의 크기와 맞지 않아서 돌려보내고 또 돌려보낸다. 그러고는 고독을 씹으며 다시 한 번 내 마음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등장할 어딘가에 존재할 상대를 기다린다. 이 모습을 보며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은 조금은 더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사랑의 감정을 인격적으로 소화하고 다스릴 수 없는 지점, 그 지점을 넘어서는 것은 건강한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이 아니다. 사랑은 인격이고, 성품이며, 선택이고, 결정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면 옷 두 벌 만을 가지는 단순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사랑 역시 제자도가 있는 삶 안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감정이 애절하다 못해 인생을 삼키는 사랑, 그런 사랑은 죄다. 우상숭배이기에 죄고, 실제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육체적인 사랑으로 몰고 가기에 죄다. 우리를 다스리는 절대적인 사랑, 그리고 절대적인 사랑에 사로잡히고자 하는 욕망은 반드시 다스려야 한다. 나를 만족 시킬 상대방에 대한 그리움, 기다림, 맹목적인 믿음, 환상이자 결혼에 대한 무지이다.그리스도의 인생을 운영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하나님의 주권, 또 하나는 나의 자유의지 선택이다. 사랑은 인생을 이끌어가는 주권자가 아니다. 사랑에게 주도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 사랑이 나를 다스리게 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그다음은 바로 내가 사랑을 선택하고 이끈다.그러므로 나는 사랑이 모든 것의 이유가 될 수 있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조금은 더 단순하게 사랑하기를 제안하고 싶다.-김지윤 지음『고백하기 좋은 날.』中-
view more +수세기 동안 아가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었다. 한 쪽 극단에서는 너무 비유적으로 해석하고, 다른 쪽 극단에서는 철저히 실용적인 교과서로 해석했다. 하지만 나는 양극단이 아닌 중간 어디쯤에 진실이 있다고 믿는다. 물론 아가서에서 우리는 로맨틱한 사랑과 결혼, 성에 관한 많은 실용적인 팁을 얻을 수 있다. 아가서는 '시'이면서 동시에 매우 실용적이다. 그래서 실질적인 결혼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은유적으로만 아가서를 해석해서는 곤란하지만, 아가서에서 우리는 이 땅에서의 결혼을 넘어 저 하늘에 계신 분을 볼 수 있어야 한다.아가서가 복잡하고 불가해하듯 결혼도 복잡하고 불가해하다. 이에 대해 바울은 구약의 구절을 차용하여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1-32).결혼생활을 꽤 오래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결혼이 비밀처럼 알쏭달쏭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살아도 살아도 모르는 것이 결혼이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결혼에 대해 잘 아신다는 것이다.우리를 놀라게 하고 다급하게 만드는 것들이 하나님을 당황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계시기에 놀라시는 법이 없다.배우자의 손을 잡고 빛을 찾아 어둠 속을 헤매고 있는가? 그 빛은 서로의 눈 속에 있지 않다. 서로를 향한 사랑의 불 속에 있지 않다. 빛은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구주 안에 있다. 결혼을 단순히 남녀가 같이 사는 것으로만 보지 않고 신부를 향한 그리스도의 깊고도 희생적이고도 영원한 사랑을 볼 수 있다면 진정으로 눈이 열린 것이다. 언젠가 죽음을 통해서든 우리 주님의 재림을 통해서든 우리의 결혼은 끝이 날 것이다. 우리의 결혼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하지만 결혼생활을 통해 우리의 영혼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화는 영원하다. 언젠가 우리는 남편을 사모하는 신부처럼 우리의 구속자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분을 대면하는 순간, 우리는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는 결혼이라는 신비를 즐기자. 결혼은 놀라운 선물이요 심오한 은혜다.그리고 모든 영광을 결혼의 저자께 돌려드리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마 19:4-6).-매트챈들러 외 지음『결혼, 하고싶다』中-
view more +“사랑하고 싶다.”이 말 한 마디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외롭다. 좋은 사람 어디 없나?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꽁냥꽁냥한 연애 한번 해봤으면.”사랑하고 싶다는 말은 사실 사랑받고 싶다는 의미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이 힘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서로가 사랑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정작 서로 자신만 사랑받기를 원한다. 이렇게 사랑받기만을 원하다 보니 서운함은 점점 커져만 간다.“너를 사랑하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데, 왜 너는 나만큼 사랑해 주지 않니? 네 사랑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아.”나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두 사람이 서로 사랑받기만을 원하는 악순환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드라마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일 뿐 나와는 거리가 멀다. 어떤 이는 반복되는 사랑의 실패와 상처에“다신 사랑 따윈 하지 않을 거야. 사랑 같은 건 없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사랑을 찾아 헤맨다. 우리는 결국 사랑받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이런 현실 속에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불가능한 것처럼 들린다. 사랑하기는커녕 사랑받기에도 벅찬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도 결국 노력이라도 해보자는건 아닐까?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은 그런 사랑이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정말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다. '그럼 나는 누가 사랑해 주냐고?'내가 예수님을 통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지를 알면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발버둥 치지 않는다. 예수님의 사랑은 허물과 더러움까지도 덮어 주는 사랑이기에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나를 포장하거나 몸부림칠 필요가 없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 안에서 우리는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그리고 이 사랑을 알 때 우리는 진짜 사랑을 하기 시작한다.받기 위한 사랑이 아니라 주기 위한 사랑을.-조재욱 『보통의 질문들 』 中-
view more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이 싹트고, 그 사람과 잘되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길 때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한다.“하나님, 저 사람을 제 짝으로 주신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쁜 사랑을 할게요.”하지만 짝사랑이 서로 사랑하는 감정으로 바뀌고 막상 연애가 시작되면 우리의 고백은 달라진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은 나를 불편하게 하고,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동화 속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하나님 안에서 예쁜 사랑을 하겠다는 우리의 기도는어느새 내가 편한, 나를 위한 사랑으로 바뀐다."하나님, 더 이상 제 연애에 간섭하지 말아 주세요. 제가 알아서 잘 할게요. 왜 꼭 그렇게 해야 하죠? 제가 원하는 사랑은 이런 거예요. 이게 제 사랑법이라고요.”처음에는 하나님 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사랑을 해도 괜찮다. 가끔 다툴 때도 있고 문제도 있지만 그래도 잘 이겨낸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는 사랑은 결국 한계가 드러난다. 식을 것 같지 않았던 사랑은 점차 식기 시작하고, 같은 문제는 여전히 반복되며, 서로에게 실망한다. 처음에는 잘 넘어갔던 문제도 더 이상 쉽게 넘어가지지 않는다. 그렇게 내 힘으로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랑은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으로 바뀌어 간다.우리의 사랑이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우리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랑하는 순간 사랑은 상처와 아픔, 좌절만을 남긴다. 다시는 사랑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여기저기 방법을 찾아 헤매지만 그럴수록 사랑은 더 어렵기만 하다.과거 결혼소식을 전하던 날, 한 유부남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진짜 사랑해? 근데 사랑한다는 게 뭐야? 나는 결혼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이 뭔지 더 모르겠어.” 하나님은 사랑을 이어 주는 결혼 정보업체가 아니다.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은 가장 뛰어난 사랑 전문가이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만 바른 사랑이 무엇이고,어떻게 사랑해야 하며, 사랑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모든 사랑에 가장 깊게 관여 하기를 원하신다. 비록 하나님의 사랑법이 내 마음에 쏙 들진 않더라도 사랑 전문가이신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사랑할 때 우리는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아 간다.사랑에 더 이상 실패하기 싫은가?그렇다면 당신에게는 사랑 전문가이신 하나님이 필요하다.-조재욱 『보통의 질문들 』 中-
view more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발[빨]'은 기세 또는 힘에 뜻을 더하는 접미사이다.이를테면, 운+발, 화장+발, 장비+발 등 다양한 어근에 결합되어 폭넓게 쓰이고 있다.오늘 이야기할 성경 속 이야기 또한 '~발'과 관련이 깊다.에스더는 바벨론 포로생활 이후 귀환하지 않고 바사에 머물러 있던 베냐민 지파 아비하일의 딸로, 일찍이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성인이 된 에스더는 와스디가 왕비 자리에서 폐위되자 왕의 사랑을 받아 왕비가 된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고아는 사회적 지지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높은 자리에 오르기가 매우 힘들었다.그런데 고아 출신인 에스더가 어떻게 왕비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그건 바로!!'뷰티 트리트먼트(beauty treatments)'가 있었기 때문이다. 에스더는 미녀선발대회 출신이었다. 그리고 미녀선발대회 본선에 오른 아가씨들은 모두 6개월 동안 몰약으로 목욕하고, 그 다음 6개월 동안은 향수와 화장수로 몸을 성결케 했다고 한다. 성경에서는 “몸을 성결케 한다”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오늘날로 말하자면'집중 관리'에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에스더는 몰약과 각종 향수 그리고 화장수를 이용해 장장 1년 동안 화장을 하고 마침내 서민의 때를 완전히 벗긴 다음에야 비로소 왕 앞에 설 수 있었다.그야말로 오늘날 연예인들이나 할 법한 청담동 집중 관리 코스보다 더욱 힘든 과정을 거쳐 아하수에로 왕을 상견했던 것이다.(에스더 2장) 고아 출신 여인이 누가 봐도 아름다운 여인이 될 정도면 이 1년은 에스더에게 스스로를 갈고 닦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에스더가 고도의 '뷰티 트리트먼트'를 통해 외모가 아름다운 여성으로 거듭나 왕의 눈에 들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녀가 가진 장점이 더욱 발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했다는 자세에 있다. 따라서, '뷰티 트리트먼트'를 통해 균형 잡힌 자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은 영적생활과 일상생활이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약 스스로의 신앙이 깊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을 꾸미는 일에는 과연 몇 점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 자신에게 어울리는 컬러를 알고 있는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과 화장법을 알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그간 '세상일'이라고 치부하며 관심을 끊었던 일들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만약 그 일이 자신의 균형잡힌 자아 형성에 도움이 된다면 서슴없이 뛰어들어 공부하고 배워라. 그리고 당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이 뭔지 연구하라. 그 과정에서 당신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내 눈과 코와 입은 어떻게 생겼는지 다시 한 번 보게 될 것이다. 화장이나 패션은 속임수가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해 주신 나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기술이다.바꿔 말하자면, 누구나 스스로의 단점은 가리고 장점이 돋보일 수 있는 노력을 한다면빛을 발할 수 있다는 뜻이다.그간 교회에서는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는 사무엘상 16장 7절 구절을 인용하며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에 관한 신앙발을 강조해왔다. 물론,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그러나 인간인 우리는 외모를 보고 호감을 느낀다. 마음에 드는 짝을 찾고 있다면 다음과 같이 해보면 어떨까?거울을 들여다보며 눈초리를 부드럽게 만들고 입꼬리를 예쁘게 올려 활짝 웃으면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야" 라고 이야기해보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외모를 관찰하고 이에 걸맞는 스타일과 화장법을 찾는다면 화장발과 신앙발이 균형을 이루어 건강한 자아를 형성함은 물론,마침내 마음에 드는 짝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양소영 ·양희욱 『사랑하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것들 』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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