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맺어진 인연, 크리스천 메이트
[시편 1편]우리는 대개 복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곤 합니다.물론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는 것이 맞습니다.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복 받은 사람'보다 '복 있는 사람'에게 더 주목하십니다.예수님께서도 팔복을 말씀하실 때 '복이 있는 사람'을 말씀하셨지요. (마 5)외부에서 받는 복도 좋지만, 내면에서 갖춰 나가는 복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시편 1편도 '복 있는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시편 1편은 특별히 복 있는 사람을 악인과 구분하고 있습니다.복 있는 사람은 형통함을 누리다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만, 악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더러는 악인들의 꾀를 따라가다가(walk), 죄인들의 길에 서고(stand), 끝내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철푸덕 주저앉아(sit) 버립니다.악인의 꾀에 빠진 것이 비록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을지라도,결국은 죄의 자리에 '정착'하고, 죄인들과 '연합'하게 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우리는 달콤한 죄의 유혹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오늘 본문 2절은 악인의 꾀에 빠지지 않는 비결을 소개하고 있는데,그것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죄의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도 좋지만,죄의 유혹을 마주할 틈조차 만들지 않는 것이 더 훌륭한 지혜입니다.'복 있는 사람'은 언제나 주님의 말씀으로 충만하여죄가 아닌 말씀의 달콤함 속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명기 6:7)
view more +[사무엘하 23:24~39]성경을 읽다 보면, 사람들의 이름이 나열된 본문은 지루해서 넘기기가 쉽습니다.그러나 다시 들여다 보면, 오늘 그 이름이 열거된 다윗의 신하들은,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성경에 그 이름이 영화롭게 기록된 사람들입니다.다시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영원히 기억하실 이름들입니다.그렇다면 성경에 이름이 영화롭게 기록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그들은 업적의 많고 적음을 떠나, 다윗의 편에서 그에게 끝까지 충성한 사람들입니다.다윗의 뜻을 중간에 배반하거나, 압살롬의 편으로 떠나 버린 사람들은 생명의 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했습니다.그러나 대단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더라도,다윗을 떠나지 않고 평생 그에게 충성한 사람들은 생명의 책에 그 이름이 영원히 기록된 것입니다.반면 세상에서 아무리 대단한 업적을 남겼더라도,그것이 가이샤를 위해 충성한 것이라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주목하지 않으십니다.오늘 우리는 누구의 편에 서 있습니까?신앙은 ‘컨디션’보다 ‘포지션’이 중요합니다.나에게 대단한 능력이 없고, 이 세상에서 대단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을지라도 괜찮습니다.우리가 영원히 예수님의 편에 서 있기만 한다면,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시고 영원히 기억하실 겁니다 :)
view more +[요한복음 6장]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이신 후, 그의 주변에는 더욱 많은 군중들이 몰려 들었습니다.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향하여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어려운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31~58)결국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은 수많은 군중들은 예수님의 곁을 모두 떠나 버렸습니다. (66)이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나를 떠날 것인지를 물어보셨습니다. (67)베드로는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하면서, 영생의 말씀이 오직 주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68)사실 요한복음 6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은 제자들에게도 이해되기 어려운 내용이었을 겁니다. (60)예수님의 살을 먹어야 한다는 말씀도 이해되지 않았겠지만, 예수님의 피를 마시라는 말씀은 더욱 납득하기 어려웠을 겁니다.당시 율법에 따르면 피를 마시는 행위는 죄를 범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그런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를 꼭 마셔야 한다고 강조하셨던 겁니다.그러나 군중들과 달리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제자들과 군중들은 자신의 믿음의 근거를 달리 두고 있었습니다.군중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만을 믿었습니다.그러나 제자들은 설령 자신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을지라도,'예수님'이라는 분께 믿음의 근거를 두었기에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우리의 믿음의 근거가 오직 예수님께 있기를 소망합니다.말씀의 홍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말씀만을 듣거나, 듣기에 좋은 말씀만을 기억하기가 쉽습니다.그러나 때로는 말씀이 당장 이해되지 않더라도, 때로는 말씀이 내 안에서 부담감으로 다가올지라도,예수님이라는 반석 위에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지켜내시기를 축복합니다.
view more +2007년, 영화 "밀양"이 개봉했습니다.영화에서 주인공 이신애(전도연)는 유괴범으로부터 자신의 아들이 살해되는 사건을 겪게 됩니다.이신애는 그 후로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죽인 유괴범을 용서하기로 결정하고 그가 수감된 교도소로 찾아갑니다.그러나 유괴범은 그녀에게 충격적인 말을 꺼냅니다.수감생활 중 자신도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께로부터 모두 용서를 받았다고 고백한 것입니다.이신애에게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미 자유해진 모습을 보인 것이지요.이신애는 아직 자신이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하실 수 있냐며, 충격을 받고 결국 정신병을 얻게 됩니다.그러나 유괴범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알았다면, 이신애에게 다른 태도로 나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구약의 5대 제사 중 '속건제'가 있습니다.속건제의 독특한 점은, 성막에서의 제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레위기 5장과 6장에는 부지중에 여호와의 성물을 범한 경우와 이웃에게 손해를 끼친 사례가 나옵니다.잘못을 범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도 용서를 구해야 하지만,제사를 드리기 전, 손해를 끼친 값에 5분의 1을 추가로 더해서 상대방에게 배상하는 절차를 꼭 선행해야 합니다.더 나아가 출애굽기 22장에서는 고의적인 도둑질에 대해 4~5배로 배상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이 경우는 자신의 범죄가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드러나게 된 경우입니다.때문에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자신이 손해를 끼친 사람들에게 4배로 갚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눅 19:8)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사건을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인정했던 것이며,이에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의 집에 '구원'이 임했다고 선언하신 겁니다.우리는 타인에게 잘못을 범했을 때 하나님 앞에서만 회개하고 그칠 때가 많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상대방에게도 책임감 있는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용서를 구해야 하는 경우에는 용서를 구해야 하고,배상이 필요한 경우에는 배상까지 철저히 해야 합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제사'보다 '배상'을 먼저 요구하셨습니다.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view more +한 여인이 말했습니다."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가 행복이었는데그때는 그걸 몰랐군요.."지혜자가 물었습니다."지금은 행복하지 않습니까?"그녀는 한숨으로 대답합니다."좋은 시절은 다 지나가 버렸지요.."지혜자는 다시 말합니다."시간이 좀 더 흐르면지금이 행복했었다고 다시 말하게 될 것입니다.깨닫는 순간이 항상 행복입니다."
view more +소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제단 앞 여호와 앞에 드리되그 소제의 고운 가루 한 움큼과 기름과 소제물 위의 유향을 다 가져다가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불살라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레위기 6:14~15)구약시대 제사에서 하나님께 번제물을 드릴 때에는 언제나 ‘소제물’도 함께 바쳤습니다.소제물은 곡식의 이삭을 빻아서 ‘고운 가루'로 만든 후에 기름을 섞어 만들었습니다.무교병을 화덕에 구워서 드릴 때도 있고, 기름까지 섞은 가루를 솥에 삶는 경우도 있었으며,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소제물을 만들기도 했습니다.중요한 것은, 기름을 섞어 만든 제물이 하나님께 향기로운 것으로 올려진다는 점입니다.소제물이 아름다운 향기가 되기 위해서는 기름이 골고루 잘 섞이는 것이 중요합니다.이를 위해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집에서 소제물의 가루를 곱게, 곱게 빻아야 합니다.고운 가루의 입자가 작을수록 기름이 골고루 잘 섞이게 되고 이것이 향기로운 제물로써 하나님께 올려지게 됩니다.우리는 교회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예배를 준비할 때가 많습니다.물론 교회 도착 후에 기도로써 예배를 준비하는 것도 좋은 자세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 예배자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집에서부터 정성껏 준비하는 예배입니다.소제의 고운 가루처럼 우리도 집에서부터 기도로써 예배를 준비할 때, 예배의 현장에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더욱 강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예배의 현장에서 우리는 더 큰 은혜를 누리게 되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흠향하시는 아름다운 산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가서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위기 2:8~9)
view more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레위기 7:15)레위기 7장 11절 이하에는 '화목제물'에 대한 규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화목제에는 '감사제', '서원제', '낙헌제'가 있으며, 각각에 대한 규례는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15절에는 감사제에 대한 규례가 기록되어 있는데,가장 눈의 띄는 점은 제물의 고기를 당일에 다 먹어야 한다는 점입니다.화목제물로 사용할 수 있는 짐승은 '소'와 '양'과 '염소'입니다. (레 3)셋 중 어떤 것이 제물로 사용되었을지라도,한 사람이 동물 한 마리를 단 하루 만에 다 먹기란 어렵습니다.화목제물을 필연적으로 주변 이웃들과 나눠 먹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이처럼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룬 사람은 주변 이웃들과도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또한 레위기 7장은 감사의 화목제물은 당일까지, 서원의 화목제물은 이튿날까지만 유효하고,그 뒤로는 가증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이는 어제의 감사로 오늘을 살지 않아야 함을 뜻합니다.과거의 은혜와 과거의 감사만으로 오늘의 신앙을 이어가려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하나님의 은혜는 매일 경험해야 하고,하나님에 대한 감사 역시도 매일 반복되어야 합니다.매일 반복되는 은혜와 감사로 우리의 신앙이 더욱 자라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16~18)
view more +[사도행전 2:1~47]레위기 23:16~17에는 '오순절'에 드리는 떡에 대한 규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본래 하나님께서는 제사에 사용되는 떡에 '누룩' 사용을 금하셨습니다.누룩은 떡을 '변질'시키고 '변형'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오순절은 예외였습니다.하나님께서는 누룩을 넣어 '부풀린 떡'(유교병)으로 오순절의 제사를 드리게끔 명령하셨습니다.오순절은 '풍성한 추수'의 기쁨을 누리는 축제의 날입니다.이스라엘은 부풀린 떡으로써 추수의 기쁨과 풍성함을 크게 기념하고, 하나님께 큰 감사를 올려드렸습니다.신약시대에서도 오순절은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를 하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십니다.이 날이 바로 오순절이었는데, 신약적 '교회'가 실질적으로 시작하는 날이 됩니다. (1)그리고 예루살렘 교회는 '영적 부흥'뿐만 아니라 '양적 부흥'까지도 경험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사람들이 교회의 신도가 되는데, 이 숫자는 3천 명이었습니다. (41)물론 누룩은 떡에 변질과 변형을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실제로 오순절에 부풀어 오르듯 부흥한 교회에는 다양한 갈등과 분쟁이 발생하곤 합니다. (*박승호, 『레위기 스피릿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라』)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의 수를 날마다 더하셨습니다. (47)우리는 교회가 양적으로 부흥하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이야기를 종종 합니다.그래서 우리는 질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부흥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합니다.그러나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주님의 뜻은 다릅니다.오순절에 시작된 교회는,영적으로도 부흥해야 하고, 동시에 양적으로도 부흥해야 합니다.믿는 사람의 수가 더해지고,이 땅 가운데서 교회가 충만해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고 힘쓰시기를 소망합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 1:23)
view more +[사도행전 15:36~41] 바울과 바나바는 돈독한 동역자 관계였습니다. 두 사람은 전도여행도 함께하며, 동고동락의 시간을 보냈습니다.그리고 두 사람은 각자의 달란트에 따라 괜찮은 호흡을 보여 왔습니다.그런 두 사람이 크게 다투고 갈라서는 장면이 오늘 본문에서 소개됩니다.두 사람이 다툰 이유는 '마가라 하는 요한' 때문입니다.1차 전도여행에서 마가는 배 멀미가 심했는지, 중도 포기하는 사태를 일으킵니다.이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전도여행에서 마가에게 맡겨진 역할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그 역할에 구멍이 생겼음을 의미합니다.또한 마가를 내려주고 무사히 귀환시키기 위해 시간과 인력과 재정이 낭비되었을 겁니다.마가의 중도포기 사건은 선교 사역에 큰 차질을 불러 일으켰을 겁니다.그러나 마가는 다시 마음을 고쳐 먹었는지, 바울과 바나바의 2차 전도여행에 동참하고자 했습니다.바나바는 마가를 데려 가고자 했으나, 바울은 그를 용납지 않았습니다.결국 바울과 바나바는 크게 다투고 갈라섭니다.우리는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로 인해 감정이 상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직접적으로 다툴 때도 있지요.문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하여우리에게 맡겨진 역할과 사역까지 쉽게 중단할 때가 더러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비록 다투고 갈라섰지만,각자의 자리에서 교회를 견고히 세워가는 일은 중단하지 않았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우리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며,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우리와 동역의 기회를 주신 분 역시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롬 11:29)
view more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누가복음 23:46]예수님께서는 이 땅으로 오셔서 자신의 사역을 성실하게 감당하셨습니다.그리고 십자가는, 예수님의 모든 사역의 정점이 되었습니다.요한복음 19:30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분명 모든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그런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시기 전에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고 계십니다.사실 성경은, 우리의 역할과 하나님의 역할을 종종 구분하곤 합니다.“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전 3:7)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역할과 아버지의 역할이 구분되어 있음을 인지하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3년 동안 열심히 가르치시고 섬기셨던 제자들까지도 아버지의 손에 맡기셨습니다. (요 17:11)그리고 십자가에서도 마지막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드림으로써 모든 사역의 매듭을 지으셨습니다.예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 아버지께 맡긴 결과는 무엇입니까?예수님의 영혼을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3일 만에 부활시키셨습니다.예수님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로 세우셨습니다.그리고 이 세상 모든 이름 위에 가장 뛰어난 이름으로 높이셨습니다.그렇기에 오늘 예수님께서는,모든 순종의 '완성'은 하나님께 결과를 맡겨드리는 데에 있음을 마지막으로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에 충성하는 것도 분명 훌륭한 믿음입니다.하지만 그 믿음의 완성은, 결과를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리는 데에 있습니다.우리에게 맡겨진 그 일도 하나님의 것이고,우리에게 맡겨진 그 영혼도 하나님의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열매를 맺으십니다 :)
view more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한복음 19:30]요한복음 13장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이 나옵니다.요한복음은 이를 가리켜,예수님께서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설명합니다.이 때 "끝까지(τέλος)"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오늘 본문 속 "다 이루었다(τελέω)"는 외침에도 사용됩니다.결국 예수님의 사랑은,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완성하실 때까지, 끝까지 책임지신 사랑입니다.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은 '위대한 교환'(the Great Exchange)입니다.예수님께서 우리 대신에 죄의 삯인 '사망'을 치르셨고,그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는데, 오히려 우리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요?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생명과 거룩의 열매를 허락해주셨는데,우리는 이 땅에서 여전히 더 많은 것이 채워져야 한다고 불평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 다 이루신 사랑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우리가 생명의 길을 완주할 때까지,현재에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끝까지(τέλος) 책임지시는 사랑입니다. (마 28:20)그 사랑이 있기에우리는 오늘도 예수님과 교제하며 살 수 있습니다.또 그 사랑을 기억하기에우리는 오늘도 그 사랑에 보답하는 사명자로 설 수 있습니다.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예수님의 사랑을끝까지 의지하여 승리하시는 크리스천메이트 회원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고후 12:9)
view more +[여호수아 14:6~14] 본문 속 이스라엘 지파들은 땅을 분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유다 지파 갈렙이 나서서 발언을 시작합니다.사실 갈렙은 과거 여리고성 정탐사건 때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이로 인해 하나님께로부터 약속의 말씀을 받은 상태였습니다."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신 1:36) 갈렙이 밟는 모든 땅은 그와 그의 자손의 것이 됩니다.그런 갈렙이 땅을 분배하는 타이밍에서 발언을 시작한 것입니다.자신이 밟는 땅은 모두 소유할 수 있으니, 땅 분배의 문제에서 우선권을 요구할 수도 있었습니다.그런데 갈렙의 입에서 나온 말이 놀랍습니다.그는 아직 정복되지도 않은 땅, 헤브론 산지를 요청합니다.그 성읍은 크고 견고했으며, 거대한 아낙 자손들이 있었습니다.그러나 85세의 갈렙은 편하게 누릴 수 있는 특권을 포기하고, 그 땅을 정복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갈렙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을 45년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유리하고 편안한 방식으로 기억하지 않았습니다.그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소원을 기억했습니다.머지않아 갈렙은 헤브론을 정복했고, 그곳은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지역이 됩니다.우리는 '비전'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훗날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나 성취할 것들을 상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곤 합니다.그러나 우리가 꿈꿔야 할 진짜 비전은,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곳을 동일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사모하고 계십니까?이 땅에서 내가 누릴 편안함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위한 비전을 발견하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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