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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나눔

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 가야한다.

작성일
2019.02.19 17:20
작성자
크리스천메이트


 



그분은 위기 상황을 통해 이끄신다.


어떤 사람을 예비하신 곳에 올라가도록 준비케 하실 목적으로 설계하신 것이 바로 위기 상황이다.


2019년 2월 15일

내가 이 책을 쓰는 동안, 어떤 학설이 기독교계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어갔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짓는 죄를 보지 않으시므로 죄의 자백은 필요하지 않으며 

회개는 율법주의의 한 형태라는 것이 그 학설의 기본적인 요점이다. 


명백한 사실로, 그 학설의 목표는 기독교를 편한 신앙으로 바꾸는 데 있다. 

그 학설은 전통적인 통설이 비성경적이라고 여기는 행실과 방종을 허용한다. 

그 학설이 그리는 하나님은 인생이 재밌기를 원하고, 인생에 어떤 종류의 훈련이나 어려움도 없기를 원하는 궁극적인 존재이다.


나는 그런 움직임이 많은 사람의 주의를 끈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렇지만 그런 움직임의 바탕을 이루는 신학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풍성한 자비 같은 복음 메시지의 특정한 면들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는 반면,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고 회개할 필요성 같은 다른 면들은 전적으로 무시한다. 

그런 종류의 사상은 하나님에 대한 균형 잡히지 않은 시각을 낳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건강하고 활기찬 관계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낳는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우주적 기계로 여길 때마다 하나님 사랑의 풍성하고 중요한 면을 놓치기 때문이다. 당신은 의문을 품을지 모른다.


‘뭐? 하나님의 사랑이 내 기분을 더 좋게 해주는 것과 무관하다고?’


정말 그렇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더 나은 사람으로 살도록 돕는 것과 관계있다.


더 강하고, 더 지혜롭고, 더 인정 많고, 우리 인생을 위한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이룰 준비를 갖춘 더 온전한 사람으로 살게 이끌어주는 것과 관계있다.


인생의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가는 동안에는 더 강하게 성장하지 못한다. 


이 사실을 더 잘 이해하고 인정할수록 더 강한 아이 팩터((I-factor, ‘나’라는 요인, 내가 나 자신과 관계 맺는 방식을 말함)를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정신적, 정서적으로 새 근육을 키울 때 성장한다. 그리고 도전과 역경에 부닥칠 때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



언제인가 월트 디즈니가 말했다.


“나는 인생길에서 겪은 모든 역경과 고생과 장애물들 덕택에 더 강해졌다.… 막상 당할 때는 깨닫지 못하겠지만 큰 시련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유익하다.”


디즈니는 옳았다. 실제로 고통스럽거나 힘들다고 여길 어떤 일이 때로는 우리에게 가장 유익하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바람직한 성품을 키워주려고 종종 문제와 위기 상황을 도구로 택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상황을 우리 삶에 허락하실 때는 성품을 키워주는 데 목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합당한 삶과 위대함의 다음 차원으로 나아갈 준비를 갖추게 하시는 데 목적이 있다.


나는 당신의 가장 좋은 날들이 당신 뒤에 있었던 게 아니라 앞에 있다고 확신한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일들, 정말 좋아서 상상도 못 할 것들을 당신을 위해 준비해두셨다(고전 2:9). 

당신은 그런 것들을 받을 준비가 되었는가? 즉, 하나님께서 당신 인생을 위해 마련해두신 

놀라운 기회들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런 것들을 잘 관리하는 데 필요한 지혜, 성숙함, 성품을 지니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의 인생을 통해 중요한 무언가를 행하기 원하실 때 종종 위기 상황을 통과하게 이끄신다.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에 올라가도록 준비케 하실 목적으로 하나님이 설계하신 위기 상황이다.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의 진정한 본질이 위기 상황 속에서 나타나고 평가받는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볼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먼저 위기 상황을 겪게 이끄신 뒤에 비로소 한층 더 중요하게 높이셨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낳기까지 오랜 세월 기다렸다. 자연적으로 불가능하게 보였을 때도 기다렸다(창 18:10,11; 21:1,2). 

이삭을 낳은 후에는 그를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것을 아는 데서 비롯된 고통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견뎌냈다. 결국 이삭은 살았지만 그 상황은 정말 위기였다(창 22장).


-요셉은 형들의 손에 노예로 팔려갔다(창 37:3-28).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라는 소명을 받았으나 그들에게 모진 대접을 받았다(출 32:1-7; 민 14:1,2; 16:41).


-여호수아는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한 뒤에야 비로소 그의 인생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목적을 이루었다(신 1:38; 31:7).


-다윗은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고(삼상 16:11) 형들에게 미움 받았다(삼상 17:28). 또한 초라하게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고(삼상 16:12,13), 기회를 얻을 때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울 왕을 섬겨야 했다(삼상 18:8-11; 19:2).


-욥은 가족과 건강과 재산을 잃었다(욥 1:13-22; 2:3-7).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에서 믿음 테스트를 지휘하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대신 그가 잘못해서 고통당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욥기 4,5,8,11,15,18,20,22,25장).


-바울은 일시적 실명 상태를 불러온 극적인 회심을 체험했고(행 9:1-9), 그가 ‘육체의 가시’라고 부른 불명확한 질병을 앓았다(고후 12:7).



위에 언급한 사람들 모두 마침내 하나님의 이야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그 전에 한 가지나 그 이상의 심각한 위기 상황을 겪었고 그 위기 상황은 

그들의 인생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의 일부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강력하게 들어 쓰시기 원했지만 그들은 먼저 성품을 더욱 강하게 키워줄 체험을 해야 했다.


예수님까지도 자기 백성들에게 배신당하고 제자들에게 버림받는 극도의 위기 상황을 겪었다. 

사람들에게 맞고 침 뱉음을 당하고 억지로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은 짓지도 않은 죄 때문에 상상 가능한 가장 잔인한 죽음, 곧 십자가형을 당해 죽으셨다.


성경 시대가 한참 지난 뒤에 살았던 혹은 살고 있는 많은 사람도 역시 위대함을 향해 가던 도중에 문제와 좌절에 부딪혔다.


성경이나 역사의 인물들만 이런 종류의 인격 형성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인격 형성 경험은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곳에 올라가기 위한 선행조건이며 


강한 아이 팩터((I-factor, ‘나’라는 요인, 내가 나 자신과 관계 맺는 방식을 말함)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합당한 삶으로 나아가려면 위기 상황을 겪어야 하며 내가 ‘죽음의 장소’라고 부르는 곳, 


즉 극도로 힘들거나 고통스럽지만 인격적으로 성장하고 강해지는 데 꼭 필요한 상황들을 통과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합당한 삶으로 가는 모든 길을 걸을 때 죽음의 장소를 통과해서 돌아간다. 

때로는 몇 번이나 그래야 한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만두고 싶은 유혹이 든다. 

우리는 위기를 겪을 때 종종 그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며 더 편한 무언가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길로 걷는 데 열중하는지를 보면 바람직한 성품을 지녔는지를 시험할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길로 걷는 데 열중하다가 환경 때문에 흔들린다. 이는 성품을 더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점을 나타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위기 상황을 허락하시는 이유이다. 싸움이 한창일 때 포기하면 하나님께서 주고자 하시는 승리를 맛보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삶을 살고 당신의 꿈을 이루기까지 어떤 시련을 겪어야 하든지 그 시련은 견딜 가치가 있다. 

중요성을 향한 여정을 기꺼이 받아들이면 당신이 창조된 목적인 위대함에 이를 것이다.


나를 자 아시는 하나님께 가야한다.




 


나를 이해하는 시간반 무디 (Van Moody) / 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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