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맺어진 인연, 크리스천 메이트
<아침에 보면 늘 레아다>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환멸이 인생 전반에 깔려 있음을 배운다.
이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누구도 현명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야곱은 "라헬만 얻을 수 있다면 다 잘 될 것이다"라고 말했고,
상대가 라헬인 줄로 알고 동침했다.
그런데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아침에, 보니, 레아였다" (창 29:25 참조).
한 주석가는 이 구절에 대해
"이는 에덴 동산 이후로 인류가 경험해 온 환멸의 축소판이다"라고 주해했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우리 희망을 어디에 걸든지 아침에 보면 라헬이 아니라 늘 레아라는 뜻이다.
물론 레아라는 인물을 십분 존중하긴 하지만 말이다(그녀에게 배울 것도 많다).
이것을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보다 더 잘 표현한 글은 없다.
"
자기 마음속을 정말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거의 누구나 알겠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간절히 원한다.
세상의 온갖 것이 당신에게 그것을 주겠다고 약속하지만 결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처음 사랑이 빠지거나 처음으로 외국을 떠올리거나
흥미로운 과목을 처음 접할 때 우리 안에 일어나는 동경이 있다.
그런데 그 동경은 결혼이나 여행이나 학업으로도 정말 채워질 수 없다.
지금 나는 결혼이나 휴가나 학문적 직업이 잘 안 풀린 경우를 말하는 게 아니라
달성할 수 있는 최고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동경의 첫 순간에만 잡힐 듯하다가 현실 속에서 바로 사라져 버리는 뭔가가 있다.
무슨 뜻인지 다들 알 것이다.
아내는 좋은 사람일 수 있고,
호텔과 경치는 훌륭했을 수 있고, 화학은 아주 흥미로운 분야일 수 있다.
그런데도 뭔가가 우리를 피해 달아났다.
"
당신도 야곱처럼 결혼해서 가장 깊은 희망과 동경의
무게를 전부 상대에게 건다면 배우자는 당신 기대에 짓눌려 쓰러질 것이다.
당신의 삶과 배우자의 삶은 다방면으로 뒤틀어질 것이다.
당신 영혼에 필요한 것을 다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최고의 배우자라도 별 수 없다.
당신은 라헬과 동침한 줄로 알겠지만 일어나 보면 늘 레아일 것이다.
이런 인류의 보편적인 실망과 환멸은 삶 전반에 펴져 있으며,
특히 자신이 가장 희망을 둔 대상에게서 실감된다.
마침내 그 사실을 깨달았다면 당신은 네 가지로 반응 할 수 있다.
첫째로 당신을 실망시킨 그 대상을 탓하며 더 나은 대상으로 옮겨갈 수 있다.
이는 우상숭배를 지속하는 영적 중독의 길이다.
둘째로 자신을 탓하며 이렇게 자책할 수 있다.
'어차피 나는 실패자야. 남은 다 행복해 보이는데 왜 나만 불행한지 모르겠어.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나 봐' 이는 자기혐오와 수치의 길이다.
셋째로 세상을 탓하며 이성을 모두 싸잡아 저주할 수 있다.
그러면 당신은 완고해지고 냉소적이고 공허해진다.
끝으로 C. S. 루이스가 소망에 대한 훌륭한 장의 끝 부분에 말했듯이,
당신도 삶의 초점 전체를 하나님 쪽으로 조정할 수 있다.
그는 "이 세상의 어떤 경험으로도 채울 수 없는 갈망이 내 안에 있다면,
가장 개연성 있는 설명은
내가 다른 세상(초월적이고 영원한 무엇)을 위해 지어졌다는 것이다"
라고 결론지었다.
- 팀켈러 <내가 만든 신 (하나님 자리를 훔치다)>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