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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칼럼

기독교 세계관에서 본 결혼.가정관2

작성일
2018.07.16 17:57
작성자
qwert0324

 


4. 결혼을 위한 준비, 이성교제, 배우자 선택의 원리 

결혼을 위한 준비나 이성교제, 혹은 배우자 선택과 같은 문제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이며, 

이런 문제에 대한 태도는 그 사람의 주관, 곧 그 사람의 가치관(세계관)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다시 말하면 결혼이나 배우자 선택에 대한 태도를 통하여 개인의 가치관, 믿음의 상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성경이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성경적 원리들을 통하여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결혼을 위한 준비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 태어나는 일과 결혼하는 일, 그리고 죽는 일은 가장 중요한 3가지로 일컬어지는데 

그 중에 태어나는 일과 죽는 일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  

그러나 결혼은 우리 각자에게 맡겨 두셨으므로 상당한 책임을 요구하신다. 

결혼을 위한 준비, 결혼 시기, 배우자등은 우리 생애에 상당한 영향을 주므로 심각한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이상적인 결혼을 위하여 적어도 다음의 몇가지 준비가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로는 육체적.정신적 준비라고 할 수 있는데, 육체적.정신적 성숙과 건강한 삶('부모를 떠나기' 위하여)은 

건전하고도 지속적인 가정생활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건강하지 않고는 가정생활이나 성생활을 계속할 수 없고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결혼생활이 가능하도록 신체적 성숙과 신체적 건강을 유지하고,

 결혼과 가정생활에 관한 합당한 이해를 갖는 정신적 준비는 긴요하다. 

이것은 이전의 관계를 떠나(부모를 떠나-) 새로운 가정을 꾸미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일차적인 준비라고 할 수 있다.  


두번째로는 도덕적.윤리적 준비('아내와 진정한 연합'을 위하여)이다. 결혼에 있어서 도덕적 혹은 

윤리적 준비라고 말할 때 특별히 결혼과 가정생활에 대한 윤리적 지침들을 이해하고, 

성경이 요구하는 도덕적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결혼 전의 규모 없는 생활이나 도덕적이지 못한 삶의 방식들은 건전한 결혼.

가정생활을 방해하고 결국 파국으로 이끌어갈 수 있으므로 바른 삶의 방식을 견지하는 일은 중요하다. 

보다 직접적으로 말해서 결혼하기까지는 정신적 순결과 함께 성적인 순결을 지켜가는 일은 중요하다.

오늘 우리시대가 아무리 성적 자유를 추구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은 순결을 지켜가며, 

도덕.윤리적 규범을 지켜가는 일은 건실하고도 정결한 가정생활을 위해 긴요하다

이것은 부부간의 진정한 연합을 위해 필요한 준비이다. 


세번째로는 영적 준비('둘이 한 몸 되기' 위하여)이다. 

영적 준비란 하나님과의 교제, 말씀, 기도의 삶을 통해 삶의 신앙적 기초를 확립해 가는 일련의 노력을 말한다. 

견고한 기초가 없는 건축물은 쉬 무너지듯이 신앙적.영적 기초 없는 결혼생활은 위험하다. 

결혼을 앞두고 기도로 준비하며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일은 매우 소중한 결혼을 위한 준비이다.  

신자이든 불신자이든 누구에게나 문제나 난제가 있을 수 있으나 신자는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영적 힘이 있어야 한다.

 결혼생활에서 제기될 수 있는 비와 바람과 창수를 이겨가기 위해서는 신앙적 토대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결혼을 위해 기도로 준비하는 일이 중요하다.  


2) 이성교제

우리의 결혼관이 성경적이어야 하듯이 이성교제 또한 성경적이어야 한다. 

이성교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이자(二者) 관계가 아니라 삼자(三者) 관계라는 점이다. 

즉 이성교제는 남자와 여자, 두 사람만의 관계가 아니고 하나님이 관계된 삼자관계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 교제의 중심은 그리스도(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 중심이어야 한다. 

신자의 삶의 모든 관계가 나와 너, 혹은 나와 그 사람만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이 게제되는 삼자 관계임을 알아야 한다.

 이성간의 교제라고 말할 때 우리는 형제와 자매 두 사람만의 관계로 생각하기 쉬우나 그리스도인의 이성교제는 하나님이 관계하시는 삼자 관계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이성교제도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이어야 한다. 

그리스도 없는 교제는 무의미하다. 

이 점을 우리는 삼각형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3) 배우자 선택의 원리

배우자 선택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매우 제한적이다.

즉 고린도후서 6:14절의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불신 결혼에 대한 

경고와 부부 중 어느 한 편이 사별했을 경우에 있어서 재혼에 대해 말씀하는 내용인 고전7:39의 '주 안에서 하라'는 말씀 뿐이다. 

구약의 경우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결혼시킬 때 가나안의 이방 여자를 택하지 않고 자기 친족의 집, 

곧 하나님을 아는 여자와 결혼하도록 한 것은 고전 6장의 교훈과 맥락을 같이 한다.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동기와 목적이 순수하고 솔직해야 한다.  

이를테면 경제적.정치적 의도나 목적을 위한 결혼은 순수하지 못하고 따라서 배우자 선택이 잘못될 수 밖에 없다. 

성적 매력이나 외모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태도 또한 건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자는 '교언영색(巧言令色)이면 선어인(鮮於仁)이다', 

곧 '말 잘하고 얼굴 잘 생긴 사람 치고 쓸만한 사람(어진 사람)이 없다'고 했다는데 참고가 되는 말씀이다.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데 이것은 결혼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격 성숙을 위해서도 긴요하다. 

그리고 주관이나 자기 합리화에 빠지지 않고 객관적인 것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 선배나 부모나 스승의 충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결혼이라는 것은 

지식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일상의 삶으로부터 도출되는 종합적인 경험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미 결혼한 선배, 스승, 부모의 애정어린 충고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의뢰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일이다.
 즉 하나님의 뜻을 밝히 분별하고 그분의 인도를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기' 때문이다(잠언19:14). 


5. 결론을 대신하여  

이 강의를 마감하면서 세 가지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로는 자신의 성숙과 현숙함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일이다.

잠언 31:10에서는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이는 진주보다 귀하니라'고 하였다. 

남자에게 있어서 현숙한 여인을 얻는 것은 진주보다 값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보다는 이성에 대해서 지나치게 관심을 쓰는 경우가 있다.  

먼저 자기 자신을 보다 성숙한(현숙한) 모습으로 성장(숙)시켜 나가는 노력이 중요하다.

 인격적.지적.사회적.정서적인 면 등에서 자기 성숙과 자기 개발을 위한 계속적인 노력은 이성에 대한 관심보다 

더 중요하며 보다 이상적인 배우자를 얻는 일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로는 결혼을 위한 상담이다. 

결혼을 위해 혼자 고민하는 일은 어느 모로나 무익하다. 

결혼을 위하여 선배, 스승, 교회 지도자(목사, 장로등)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필요한 상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가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셋째로는 교회나 기독교 공동체는 그리스도인의 이상적인 결혼, 

기독교적 가정의 탄생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좋은 가정, 

곧 하나님이 기뻐하는 가정을 세워가는 일은 개인만이 아니라 교회나 기독교 공동체가 함께 감당해야 할 사명이기 때문이다.  

18세기 영국의 위대한 역사가였던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은 로마제국 패망의 근본적인 원인중의 하나가 

가정의 파괴였다고 지적한 일이 있는데 건전한 신앙적 가정을 세워가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상규 교수(고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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