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맺어진 인연, 크리스천 메이트
나의 목자는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푸른 풀밭에서 뛰놀게 하시고잔잔한 물가로 데려가 주세요.그렇다고푸른 풀밭에서만 살기 위해목자를 따르는 건 아니에요.실은 나의 목자도 늘 쉴 만한 물가로만데려가 주시는 것도 아니지요.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도 데려가시고원수가 있는 곳에 두기도 하세요.그렇지만, 두려워 할 필요는 없어요.목자의 지팡이로 지켜 주시니까요.원수의 바로 앞에서나를 위한 잔치를 열어 주시니까요.양은 푸른 초장과 쉴 만한물가를 찾아 헤매는 게 아니에요.양은 목자를 꼭 찾아야 해요. 양은 푸른 초장과 쉴 만한물가를 위해 기도하는 게 아니에요.그건 목자만 잘 따르면저절로 누릴 수 있는 복이니까요.양은 목자 앞에 바로 서기 위해 기도하는 거예요.주님만 잘 바라보기 위해서… [사랑에 안기다 중 글/그림 고래일기님]
view more +믿음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신 귀한 선물이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안에 있는 은혜입니다.(엡 2:8)누구는 어떻게 든 믿어보고 싶어 안간힘을 써도 믿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데, 우리가 자연스럽에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예수님이 구주이심이 믿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이 분명합니다!더욱이 같은 믿음과 같은 마음 안에서 두 남녀가 만나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 이루는 것은 앞으로 살아가는 삶에서 큰 축복입니다.주일 은혜 받은 말씀 묵상을 나눌 때에도 기쁨이 되고어린 자녀에게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이끌어 주신다고 함께 가르칠 수 있습니다.장성한 자녀가 시험을 앞두고 주일성수를 하는 것을 함께 응원할 수도 있고하나님의 명령인 십일조 부분에서도 갈등할 이유가 더 적어집니다.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메지말라(고후 6:14) 말씀처럼불신자와 결혼하게 되면 결코 쉽지 않습니다.주일 성수, 십일조, 자녀양육 등등 모든 문제에서 다른 의견 충돌을 겪습니다. 만일 나의 배우자가 될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요?나의 전도를 통해 믿을 마음은 생겨도믿어지지 않아 몸부림치면서 괴로워하는 분이라면 얼마나 안타까울까요!아예 믿기를 시도조차 안하는 사람이면.......그렇기에 내가 믿음 없는 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믿음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은 철저한 교만 함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의 영역이고, 내 영역은 사람이 변할 수 있도록 눈물로 기도하는 것 뿐 입니다. 나보다 조건이 좀 부족하고 스펙이 나보다 낮아도 성숙한 믿음을 가진 청년은 가치가 있습니다.믿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고 하나님 중심의 다른 생각을 하기에 결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학력과 직업과 돈을 뛰어 넘는 가치입니다.회원분들 중 프로필을 잘 적으신 분들은 진실함과 귀한 가치로 빛이 납니다.그런 분들의 본질과 신앙이 참 가치라는 사실을 볼 수 있는 모든 크리스천 메이트 회원분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살아있는 믿음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그 믿음은 영생에 대한 소망을 항상 불가분의 동반자로 소유하고 있거나, 혹은 이를 낳거나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와 같은 소망이 없다면, 우리가 아무리 분명하고 세련되게 믿음에 대해서 말한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살아있는 믿음이 없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믿음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굳은 확신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진리는 결코 거짓되지 않고, 결코 속이지 않으며, 결코 헛되지 않다는 확신이며, 이런 확신을 얻은 사람은 동시에 하나님이 그 분의 약속을 시행하실 것임을 반드시 기대하고또한 그 분의 약속이 절대적으로 진실하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 3권, 2장, 42절
view more +[잠언 4:23]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주님께서 우리가 지켜야 할 많은 것들중 가장 제일로 중히 말씀하신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우리는 우리의 자존심,명예,통장잔고,가족의안위,미래의 평탄함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할때주님께선 우리 마음의 중심, 영혼의 갈망을 지키라 말씀하십니다.주님과의 관계주님을 그리워하고 갈망하는 심령.. [시편 42:1]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우리가 진정 지키고 추구해야 할 영혼의 건강과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아름다운 관계를 위해 우리의 시간과 열정 정성을 드려주어진 시간과 자원을 활용하는 크리스천이 되도록 노력합시다.마지막 날 주께서 심판날에 우리 삶을 계수하실 때에통장잔고, 이땅에서의 업적, 사람들의 평판보다주님을 더욱 사랑했노라고, 이웃을 섬겼노라고 행위의 자랑이 아닌 겸손히 칭찬 받는 주의 종이 됩시다.결혼을 위한 목적도 결코 이땅에서 편안하게 살기 위함이 아닌하나님의 영광과 나라를 위함을 잊지 않고 정진하는 크리스천 메이트 회원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view more +성경은 영생에 이르는 분명한 길을 제시합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들을 저질러 왔으며, 이에 형벌을 받아 마땅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는 궁극적으로 영원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원한 형벌만이 합당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그러나 죄가 없으시며(벧전 2:22)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셔서(요 1:1, 14) 우리의 형벌을 대신 치르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요 19:31-42)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고후 5:21). 그리고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고전 15:1-4), 죄와 사망으로부터 승리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 1:3).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마음가짐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가 누구이며,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그리고 왜 하셨는지 알아야 합니다(행 3:19).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가 우리의 죄값 을 대신 지불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신뢰한다면, 우리는 죄 사함 을 받고 천국 에 속한 영원한 삶을 약속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믿는 것만이 영생에 이르는 유일하고 참된 길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기를 원하신다면, 다음의 기도를 따라하십시오. 기억하실 것은, 우리가 이런 종류의 기도문을 읊는 것만으로 무조건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향한 신뢰만이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이 기도는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믿음과 감사를 표현하는 간단한 방법입니다. “하나님, 저는 죄인이며 죄에 대한 벌을 받기에 합당함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셨고 그분을 믿음으로써 제가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직 당신만이 저를 구원하실 수 있음을 신뢰합니다. 당신의 놀라운 은혜와 용서의 결과로 영생이라는 선물을 주심에 것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view more +그리스도인들은 현실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그러나 자기 힘과 자기의 능력으로만 살아서는 안됩니다.최선을 다하여 살면서 주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잠언은 말합니다."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 3:5~6)"이것이 바로 항상 기도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삶입니다.매사에 모든 일에 주님을 인정하고그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view more +주님께서는 세상을 떠나시면서고난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고독이 없을 것이라고,상처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다만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view more +질문: 용서를 받으셨습니까?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답변: 사도행전 13장 38절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라고 선언합니다.용서란 무엇이며, 왜 내가 용서를 받아야 하나요?‘용서하다’라는 단어는 과거의 잘못을 덮어주고, 눈감아주며, 빚을 청산해준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상대방의 용서를 구합니다. 그런데 용서는 무작정 / 거저 / 대가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받아 마땅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용서는 사랑, 자비, 그리고 은혜의 행위입니다. 용서란 누군가 나에게 어떠한 잘못을 했을지라도, 그 사람이 아무런 짐도 짊어지지 않게 하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성경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용서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죄를 범했습니다. 전도서 7장 20절은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라고 선언합니다. 요한일서 1장 8절은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모든 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입니다(시 51: 4).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용서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 사함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죄의 결과로 영원히 고통당하게 될 것입니다(마 25: 46; 요 3: 36).용서 – 어떻게 받을 수 있나요?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가 풍성한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해주시길 원하십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은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해주시길 바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친히 마련해 주셨습니다.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은 사망뿐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 상반절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선언합니다. 영원한 죽음은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해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완전한 계획 가운데 인간이 되셨는데,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요 1:1, 14). 예수님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죽음’이라는 형벌을 대신 지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죽음’이라는 형벌을 우리 대신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용서를 베푸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2절은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죄와 사망에 대한 승리를 선포하셨습니다(고전 15:1-28).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 23b).죄 사함 받기를 원하십니까?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계신가요?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인다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용서받음을 위해 우리 죄의 빚을 다 갚아주셨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나의 죄를 대신해 죽으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예수님을 통해 나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용서해주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17절에 이 놀라운 소식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용서 – 정말 그렇게 쉬운 일인가요?그렇습니다! 용서는 우리의 노력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대가를 지불하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기 원하신다면,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억하실 것은, 이런 종류의 기도문을 읊는다고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만이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이 기도는 용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께 믿음과 감사를 표현하는 간단한 방법입니다. “하나님, 저는 죄인이며 벌을 받기에 합당함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의 죗값을 대신 짊어지셨고, 그분을 믿음으로써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구원을 위해 오직 당신만을 신뢰합니다. 당신의 놀라운 은혜와 용서의 결과로 영생이라는 선물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아멘!”
view more +그분은 위기 상황을 통해 이끄신다.어떤 사람을 예비하신 곳에 올라가도록 준비케 하실 목적으로 설계하신 것이 바로 위기 상황이다.2019년 2월 15일내가 이 책을 쓰는 동안, 어떤 학설이 기독교계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어갔다.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짓는 죄를 보지 않으시므로 죄의 자백은 필요하지 않으며 회개는 율법주의의 한 형태라는 것이 그 학설의 기본적인 요점이다. 명백한 사실로, 그 학설의 목표는 기독교를 편한 신앙으로 바꾸는 데 있다. 그 학설은 전통적인 통설이 비성경적이라고 여기는 행실과 방종을 허용한다. 그 학설이 그리는 하나님은 인생이 재밌기를 원하고, 인생에 어떤 종류의 훈련이나 어려움도 없기를 원하는 궁극적인 존재이다.나는 그런 움직임이 많은 사람의 주의를 끈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렇지만 그런 움직임의 바탕을 이루는 신학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풍성한 자비 같은 복음 메시지의 특정한 면들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는 반면,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고 회개할 필요성 같은 다른 면들은 전적으로 무시한다. 그런 종류의 사상은 하나님에 대한 균형 잡히지 않은 시각을 낳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건강하고 활기찬 관계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낳는다.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우주적 기계로 여길 때마다 하나님 사랑의 풍성하고 중요한 면을 놓치기 때문이다. 당신은 의문을 품을지 모른다.‘뭐? 하나님의 사랑이 내 기분을 더 좋게 해주는 것과 무관하다고?’정말 그렇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더 나은 사람으로 살도록 돕는 것과 관계있다.더 강하고, 더 지혜롭고, 더 인정 많고, 우리 인생을 위한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이룰 준비를 갖춘 더 온전한 사람으로 살게 이끌어주는 것과 관계있다.인생의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가는 동안에는 더 강하게 성장하지 못한다. 이 사실을 더 잘 이해하고 인정할수록 더 강한 아이 팩터((I-factor, ‘나’라는 요인, 내가 나 자신과 관계 맺는 방식을 말함)를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정신적, 정서적으로 새 근육을 키울 때 성장한다. 그리고 도전과 역경에 부닥칠 때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언제인가 월트 디즈니가 말했다.“나는 인생길에서 겪은 모든 역경과 고생과 장애물들 덕택에 더 강해졌다.… 막상 당할 때는 깨닫지 못하겠지만 큰 시련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유익하다.”디즈니는 옳았다. 실제로 고통스럽거나 힘들다고 여길 어떤 일이 때로는 우리에게 가장 유익하다.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바람직한 성품을 키워주려고 종종 문제와 위기 상황을 도구로 택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상황을 우리 삶에 허락하실 때는 성품을 키워주는 데 목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합당한 삶과 위대함의 다음 차원으로 나아갈 준비를 갖추게 하시는 데 목적이 있다.나는 당신의 가장 좋은 날들이 당신 뒤에 있었던 게 아니라 앞에 있다고 확신한다.하나님께서 엄청난 일들, 정말 좋아서 상상도 못 할 것들을 당신을 위해 준비해두셨다(고전 2:9). 당신은 그런 것들을 받을 준비가 되었는가? 즉, 하나님께서 당신 인생을 위해 마련해두신 놀라운 기회들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런 것들을 잘 관리하는 데 필요한 지혜, 성숙함, 성품을 지니고 있는가?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의 인생을 통해 중요한 무언가를 행하기 원하실 때 종종 위기 상황을 통과하게 이끄신다.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에 올라가도록 준비케 하실 목적으로 하나님이 설계하신 위기 상황이다.‘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의 진정한 본질이 위기 상황 속에서 나타나고 평가받는다.성경 전체를 통해서 볼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먼저 위기 상황을 겪게 이끄신 뒤에 비로소 한층 더 중요하게 높이셨다.-아브라함은 아들을 낳기까지 오랜 세월 기다렸다. 자연적으로 불가능하게 보였을 때도 기다렸다(창 18:10,11; 21:1,2). 이삭을 낳은 후에는 그를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것을 아는 데서 비롯된 고통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견뎌냈다. 결국 이삭은 살았지만 그 상황은 정말 위기였다(창 22장).-요셉은 형들의 손에 노예로 팔려갔다(창 37:3-28).-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라는 소명을 받았으나 그들에게 모진 대접을 받았다(출 32:1-7; 민 14:1,2; 16:41).-여호수아는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한 뒤에야 비로소 그의 인생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목적을 이루었다(신 1:38; 31:7).-다윗은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고(삼상 16:11) 형들에게 미움 받았다(삼상 17:28). 또한 초라하게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고(삼상 16:12,13), 기회를 얻을 때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울 왕을 섬겨야 했다(삼상 18:8-11; 19:2).-욥은 가족과 건강과 재산을 잃었다(욥 1:13-22; 2:3-7).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에서 믿음 테스트를 지휘하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대신 그가 잘못해서 고통당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욥기 4,5,8,11,15,18,20,22,25장).-바울은 일시적 실명 상태를 불러온 극적인 회심을 체험했고(행 9:1-9), 그가 ‘육체의 가시’라고 부른 불명확한 질병을 앓았다(고후 12:7).위에 언급한 사람들 모두 마침내 하나님의 이야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그 전에 한 가지나 그 이상의 심각한 위기 상황을 겪었고 그 위기 상황은 그들의 인생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의 일부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강력하게 들어 쓰시기 원했지만 그들은 먼저 성품을 더욱 강하게 키워줄 체험을 해야 했다.예수님까지도 자기 백성들에게 배신당하고 제자들에게 버림받는 극도의 위기 상황을 겪었다. 사람들에게 맞고 침 뱉음을 당하고 억지로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은 짓지도 않은 죄 때문에 상상 가능한 가장 잔인한 죽음, 곧 십자가형을 당해 죽으셨다.성경 시대가 한참 지난 뒤에 살았던 혹은 살고 있는 많은 사람도 역시 위대함을 향해 가던 도중에 문제와 좌절에 부딪혔다.성경이나 역사의 인물들만 이런 종류의 인격 형성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인격 형성 경험은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곳에 올라가기 위한 선행조건이며 강한 아이 팩터((I-factor, ‘나’라는 요인, 내가 나 자신과 관계 맺는 방식을 말함)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합당한 삶으로 나아가려면 위기 상황을 겪어야 하며 내가 ‘죽음의 장소’라고 부르는 곳, 즉 극도로 힘들거나 고통스럽지만 인격적으로 성장하고 강해지는 데 꼭 필요한 상황들을 통과해야 한다.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합당한 삶으로 가는 모든 길을 걸을 때 죽음의 장소를 통과해서 돌아간다. 때로는 몇 번이나 그래야 한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만두고 싶은 유혹이 든다. 우리는 위기를 겪을 때 종종 그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며 더 편한 무언가를 원한다.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길로 걷는 데 열중하는지를 보면 바람직한 성품을 지녔는지를 시험할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길로 걷는 데 열중하다가 환경 때문에 흔들린다. 이는 성품을 더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점을 나타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위기 상황을 허락하시는 이유이다. 싸움이 한창일 때 포기하면 하나님께서 주고자 하시는 승리를 맛보지 못할 것이다.하나님이 정해주신 삶을 살고 당신의 꿈을 이루기까지 어떤 시련을 겪어야 하든지 그 시련은 견딜 가치가 있다. 중요성을 향한 여정을 기꺼이 받아들이면 당신이 창조된 목적인 위대함에 이를 것이다.나를 자 아시는 하나님께 가야한다. 나를 이해하는 시간반 무디 (Van Moody) / 규장
view more +잊엇던 이름 '요나단'선교지에서 제1기 사역의 저의 이름은 도마였습니다.순교자의 마음으로 사역하자는 뜻이 었습니다.그리고 그 이후 요나단으로 사용했습니다.다윗을 도왔던 신실한 친구 다른 사람 을 섬기고 세워주는 리더십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었는데, 귀국해서 잊엇던 이름으로 다시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삼상14장4-6절 “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 사이 이쪽에는 험한 바위가 있고저쪽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 5 / 한 바위는 북쪽에서 믹마스 앞에 일어섰고 하나는 남쪽에서 게바 앞에 일어섰더라 6 /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협곡을 사이에 두고 두 바위가 마주 서 있었습니다. 믹마스 앞에 일어선 바위는 ‘보세스’이고, 게바 앞에 일어선 바위는 ‘세네’입니다. 요나단이 자기 무기를 든 소년에게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6)하고 말합니다.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나타내는 징표입니다(창 17:10). 이 표현은 훗날 골리앗을 상대하는 다윗도 사용한 표현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상황을 보지만, 요나단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치 출애굽 광야 당시,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세가 보낸 열 두 정탐꾼이 생각납니다(민13:25).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서 10명의 사람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하며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하고 긍정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요나단의 마음속에는 아무리 상황이 어둡게 진행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면 이길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엡 6:11-12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요나단에게는 요나단과 마음을 같이하여 그의 뒤를 따르는 좋은 동역자가 있었습니다.7절 “무기를 든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 하여 따르리이다.” 신앙의 삶은 한편으로는 기쁘고 즐겁고 소망이 있는 삶이지만,다른 한편으로는 외롭고 힘든 고난의 삶이자 좁은 문을 통과하는 어려운 삶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귀한 동역자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연약하고 부족함이 있지만 같이 걷는 믿음의 길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와 격려가 되는 동역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다시 요나단으로 ===========================================================================이 글은 현재 크리스천 메이트 회원으로 계신 박OO 목사님의 글 입니다.막막한 상황 가운데 있는 회원님들께 힘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view more +그리스도인은 성도라고 불립니다. 성도란 거룩한 무리를 의미합니다. 과연 우리는 거룩합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거룩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영접한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악하고 어리석으며 교만하고 게으르고 더러우며 이기적입니다. 우리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거룩한 분이 거하십니다. 우리 안에 놀라우신 분이 거하십니다. 우리 안에 영광과 거룩과 능력과 지혜와 사랑이 가득하신 분이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거룩하고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 거룩하시고 놀라우신 분을 모셨기 때문에 성도입니다. 그것은 간장을 담은 병을 간장병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우리의 생각과 기질과 성향대로 산다면 그것은 곧 실패하는 삶이며 비참한 삶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사는 삶이며 내가 나타나는 삶입니다. 그것은 곧 지옥과 같은 삶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열매맺는 삶, 승리하는 삶의 비결은 오직 내가 사는 삶이 아니요 내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사는 삶인 것을 꼭 기억해두십시오. 내가 행하는 삶, 내가 기쁘고 행복한 삶이 아니라 내 안에서 주님이 행하시고 주님이 기뻐하시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의 고통이나 슬픔이 아닌 주님의 고통과 슬픔을 느끼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내 안에서 주님이 사실 때 그것이 곧 승리하는 삶이며 영광이 가득한 삶입니다. 우리 안에서 주님이 사신다면, 우리가 주님의 통로가 된다면, 우리 안에서 주님의 기쁨과 슬픔과 눈물과 근심과 그 모든 것이 나타난다면, 우리 안에서 주님의 긍휼과 자비가 나타난다면.. 그것이 곧 승리이며 영광이며 행복입니다. 나의 취향과 입장이 사라지고 오직 주님의 취향과 입장이 나타날 때.. 그것이 곧 영광의 삶이며 천국의 빛과 향취로 가득한 삶인 것입니다. 오.. 주님.. 오늘도 주님의 영으로,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의 입장으로 살게 하옵소서. 주님의 슬픔과 기쁨과 자비와 근심과.. 주님에 속한 모든 것이.. 우리 안에서 흐르게 하옵소서.. 아멘..
view more +한 동안 이런 광고가 있었습니다.아무도 2등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오직 1등뿐입니다..하는 멘트입니다.그러나 주님은 2등도, 꼴찌도 기억하십니다.1등에 대한 집념만큼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감사하고 순간을 누리며 최선을 다하는 삶,그것이 바로 승리이며 1등의 삶인 것입니다.
view more +사람들은 우리를 칭찬하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합니다.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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