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맺어진 인연, 크리스천 메이트
소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제단 앞 여호와 앞에 드리되그 소제의 고운 가루 한 움큼과 기름과 소제물 위의 유향을 다 가져다가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불살라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레위기 6:14~15)구약시대 제사에서 하나님께 번제물을 드릴 때에는 언제나 ‘소제물’도 함께 바쳤습니다.소제물은 곡식의 이삭을 빻아서 ‘고운 가루'로 만든 후에 기름을 섞어 만들었습니다.무교병을 화덕에 구워서 드릴 때도 있고, 기름까지 섞은 가루를 솥에 삶는 경우도 있었으며,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소제물을 만들기도 했습니다.중요한 것은, 기름을 섞어 만든 제물이 하나님께 향기로운 것으로 올려진다는 점입니다.소제물이 아름다운 향기가 되기 위해서는 기름이 골고루 잘 섞이는 것이 중요합니다.이를 위해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집에서 소제물의 가루를 곱게, 곱게 빻아야 합니다.고운 가루의 입자가 작을수록 기름이 골고루 잘 섞이게 되고 이것이 향기로운 제물로써 하나님께 올려지게 됩니다.우리는 교회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예배를 준비할 때가 많습니다.물론 교회 도착 후에 기도로써 예배를 준비하는 것도 좋은 자세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 예배자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집에서부터 정성껏 준비하는 예배입니다.소제의 고운 가루처럼 우리도 집에서부터 기도로써 예배를 준비할 때, 예배의 현장에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더욱 강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예배의 현장에서 우리는 더 큰 은혜를 누리게 되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흠향하시는 아름다운 산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가서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위기 2:8~9)
view more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레위기 7:15)레위기 7장 11절 이하에는 '화목제물'에 대한 규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화목제에는 '감사제', '서원제', '낙헌제'가 있으며, 각각에 대한 규례는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15절에는 감사제에 대한 규례가 기록되어 있는데,가장 눈의 띄는 점은 제물의 고기를 당일에 다 먹어야 한다는 점입니다.화목제물로 사용할 수 있는 짐승은 '소'와 '양'과 '염소'입니다. (레 3)셋 중 어떤 것이 제물로 사용되었을지라도,한 사람이 동물 한 마리를 단 하루 만에 다 먹기란 어렵습니다.화목제물을 필연적으로 주변 이웃들과 나눠 먹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이처럼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룬 사람은 주변 이웃들과도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또한 레위기 7장은 감사의 화목제물은 당일까지, 서원의 화목제물은 이튿날까지만 유효하고,그 뒤로는 가증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이는 어제의 감사로 오늘을 살지 않아야 함을 뜻합니다.과거의 은혜와 과거의 감사만으로 오늘의 신앙을 이어가려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하나님의 은혜는 매일 경험해야 하고,하나님에 대한 감사 역시도 매일 반복되어야 합니다.매일 반복되는 은혜와 감사로 우리의 신앙이 더욱 자라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16~18)
view more +[사도행전 2:1~47]레위기 23:16~17에는 '오순절'에 드리는 떡에 대한 규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본래 하나님께서는 제사에 사용되는 떡에 '누룩' 사용을 금하셨습니다.누룩은 떡을 '변질'시키고 '변형'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오순절은 예외였습니다.하나님께서는 누룩을 넣어 '부풀린 떡'(유교병)으로 오순절의 제사를 드리게끔 명령하셨습니다.오순절은 '풍성한 추수'의 기쁨을 누리는 축제의 날입니다.이스라엘은 부풀린 떡으로써 추수의 기쁨과 풍성함을 크게 기념하고, 하나님께 큰 감사를 올려드렸습니다.신약시대에서도 오순절은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를 하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십니다.이 날이 바로 오순절이었는데, 신약적 '교회'가 실질적으로 시작하는 날이 됩니다. (1)그리고 예루살렘 교회는 '영적 부흥'뿐만 아니라 '양적 부흥'까지도 경험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사람들이 교회의 신도가 되는데, 이 숫자는 3천 명이었습니다. (41)물론 누룩은 떡에 변질과 변형을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실제로 오순절에 부풀어 오르듯 부흥한 교회에는 다양한 갈등과 분쟁이 발생하곤 합니다. (*박승호, 『레위기 스피릿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라』)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의 수를 날마다 더하셨습니다. (47)우리는 교회가 양적으로 부흥하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이야기를 종종 합니다.그래서 우리는 질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부흥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합니다.그러나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주님의 뜻은 다릅니다.오순절에 시작된 교회는,영적으로도 부흥해야 하고, 동시에 양적으로도 부흥해야 합니다.믿는 사람의 수가 더해지고,이 땅 가운데서 교회가 충만해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고 힘쓰시기를 소망합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 1:23)
view more +[사도행전 15:36~41] 바울과 바나바는 돈독한 동역자 관계였습니다. 두 사람은 전도여행도 함께하며, 동고동락의 시간을 보냈습니다.그리고 두 사람은 각자의 달란트에 따라 괜찮은 호흡을 보여 왔습니다.그런 두 사람이 크게 다투고 갈라서는 장면이 오늘 본문에서 소개됩니다.두 사람이 다툰 이유는 '마가라 하는 요한' 때문입니다.1차 전도여행에서 마가는 배 멀미가 심했는지, 중도 포기하는 사태를 일으킵니다.이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전도여행에서 마가에게 맡겨진 역할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그 역할에 구멍이 생겼음을 의미합니다.또한 마가를 내려주고 무사히 귀환시키기 위해 시간과 인력과 재정이 낭비되었을 겁니다.마가의 중도포기 사건은 선교 사역에 큰 차질을 불러 일으켰을 겁니다.그러나 마가는 다시 마음을 고쳐 먹었는지, 바울과 바나바의 2차 전도여행에 동참하고자 했습니다.바나바는 마가를 데려 가고자 했으나, 바울은 그를 용납지 않았습니다.결국 바울과 바나바는 크게 다투고 갈라섭니다.우리는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로 인해 감정이 상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직접적으로 다툴 때도 있지요.문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하여우리에게 맡겨진 역할과 사역까지 쉽게 중단할 때가 더러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비록 다투고 갈라섰지만,각자의 자리에서 교회를 견고히 세워가는 일은 중단하지 않았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우리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며,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우리와 동역의 기회를 주신 분 역시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롬 11:29)
view more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누가복음 23:46]예수님께서는 이 땅으로 오셔서 자신의 사역을 성실하게 감당하셨습니다.그리고 십자가는, 예수님의 모든 사역의 정점이 되었습니다.요한복음 19:30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분명 모든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그런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시기 전에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고 계십니다.사실 성경은, 우리의 역할과 하나님의 역할을 종종 구분하곤 합니다.“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전 3:7)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역할과 아버지의 역할이 구분되어 있음을 인지하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3년 동안 열심히 가르치시고 섬기셨던 제자들까지도 아버지의 손에 맡기셨습니다. (요 17:11)그리고 십자가에서도 마지막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드림으로써 모든 사역의 매듭을 지으셨습니다.예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 아버지께 맡긴 결과는 무엇입니까?예수님의 영혼을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3일 만에 부활시키셨습니다.예수님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로 세우셨습니다.그리고 이 세상 모든 이름 위에 가장 뛰어난 이름으로 높이셨습니다.그렇기에 오늘 예수님께서는,모든 순종의 '완성'은 하나님께 결과를 맡겨드리는 데에 있음을 마지막으로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에 충성하는 것도 분명 훌륭한 믿음입니다.하지만 그 믿음의 완성은, 결과를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리는 데에 있습니다.우리에게 맡겨진 그 일도 하나님의 것이고,우리에게 맡겨진 그 영혼도 하나님의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열매를 맺으십니다 :)
view more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한복음 19:30]요한복음 13장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이 나옵니다.요한복음은 이를 가리켜,예수님께서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설명합니다.이 때 "끝까지(τέλος)"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오늘 본문 속 "다 이루었다(τελέω)"는 외침에도 사용됩니다.결국 예수님의 사랑은,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완성하실 때까지, 끝까지 책임지신 사랑입니다.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은 '위대한 교환'(the Great Exchange)입니다.예수님께서 우리 대신에 죄의 삯인 '사망'을 치르셨고,그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는데, 오히려 우리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요?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생명과 거룩의 열매를 허락해주셨는데,우리는 이 땅에서 여전히 더 많은 것이 채워져야 한다고 불평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 다 이루신 사랑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우리가 생명의 길을 완주할 때까지,현재에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끝까지(τέλος) 책임지시는 사랑입니다. (마 28:20)그 사랑이 있기에우리는 오늘도 예수님과 교제하며 살 수 있습니다.또 그 사랑을 기억하기에우리는 오늘도 그 사랑에 보답하는 사명자로 설 수 있습니다.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예수님의 사랑을끝까지 의지하여 승리하시는 크리스천메이트 회원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고후 12:9)
view more +[여호수아 14:6~14] 본문 속 이스라엘 지파들은 땅을 분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유다 지파 갈렙이 나서서 발언을 시작합니다.사실 갈렙은 과거 여리고성 정탐사건 때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이로 인해 하나님께로부터 약속의 말씀을 받은 상태였습니다."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신 1:36) 갈렙이 밟는 모든 땅은 그와 그의 자손의 것이 됩니다.그런 갈렙이 땅을 분배하는 타이밍에서 발언을 시작한 것입니다.자신이 밟는 땅은 모두 소유할 수 있으니, 땅 분배의 문제에서 우선권을 요구할 수도 있었습니다.그런데 갈렙의 입에서 나온 말이 놀랍습니다.그는 아직 정복되지도 않은 땅, 헤브론 산지를 요청합니다.그 성읍은 크고 견고했으며, 거대한 아낙 자손들이 있었습니다.그러나 85세의 갈렙은 편하게 누릴 수 있는 특권을 포기하고, 그 땅을 정복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갈렙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을 45년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유리하고 편안한 방식으로 기억하지 않았습니다.그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소원을 기억했습니다.머지않아 갈렙은 헤브론을 정복했고, 그곳은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지역이 됩니다.우리는 '비전'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훗날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나 성취할 것들을 상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곤 합니다.그러나 우리가 꿈꿔야 할 진짜 비전은,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곳을 동일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사모하고 계십니까?이 땅에서 내가 누릴 편안함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위한 비전을 발견하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
view more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요한복음 19:28)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목마름'을 호소하셨습니다.십자가에서 분명 여러 고통들이 많았을 텐데,예수님께서 굳이 '목마름'을 호소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성경은,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와 저주들을 '목마름'으로 자주 표현했습니다. (시42; 시63; 눅16; 계22)실제로 세상에는 우리의 갈증을 일으키는 다양한 문제들이 있습니다.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바라보고 비교하면,나의 학력, 재산, 외모, 집안, 명예, 지위 등이 부족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우리는 여전히 다양한 목마름을 가지고 고군분투 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에수님께서는 우리가 겪어야 할 모든 목마름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습니다.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목마름을 해결하는 '참된 음료'가 되었습니다. (요 6:55)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요 7:37~38)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 분만을 바라볼 때더 이상 우리는 세상의 것으로 인해 목마름을 호소하지 않게 됩니다.주님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시고 넘치는 기쁨을 경험하시길 소망합니다 :)
view more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다니엘 1:8~9)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남유다의 멸망으로 인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불행 중 다행으로,이들은 왕궁에서 학문을 갈고 닦으며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그러나 이들은 안정적인 생활에 다시 위협이 가해질 수도 있는 결단을 내립니다.바로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마시지 않기로 뜻을 정한 것입니다.그들에게 주어진 왕의 음식이란, 우상에게 드려진 것들과 성경이 규정한 부정한 동물들이 포함된 것으로써 이를 먹으면 자연히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게 됩니다.이들이 말씀을 지키기로 뜻을 정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도우시고 보호하십니다.그런데 하나님께서 도우신 방법은 초월적인 힘이 아니었습니다.다니엘이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셨습니다.즉 다니엘의 일상 속에서, 그리고 그의 관계 속에서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조용히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우리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바로 말씀을 지키기로 뜻을 정하는 것입니다.
view more +[에스더 4:13~17]페르시아의 지배에 놓여 있던 유대 민족은 크나큰 위기를 맞이합니다.아하수에로의 총애를 받던 하만이 유대 민족 전체를 죽이려 한 것입니다.이에 모르드개는 왕후였던 에스더를 일깨웁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모르드개는 민족의 위기 앞에서 금식하며 통곡하고 있었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인의 놓임과 구원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비록 에스더서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으셨지만, 분명 하나님께서는 유대 민족과 함께하셨습니다.모르드개는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실 것에 대한 믿음을 지닌 것입니다.이 말을 들은 에스더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결단합니다."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스더는 왕의 사랑을 받던 왕후였습니다.그녀의 출신은 모르드개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몰랐습니다.때문에 그녀의 안위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그러나 이제는 불과 며칠 후에 가장 먼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을 굳이 만듭니다.즉 에스더는 하나님의 승리에 동참하는 믿음을 보인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에스더서와 마찬가지로오늘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도 하나님은 마치 무대 뒤에 계신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약속'과 '승리'를 신실하게 이루십니다.그리고 이 '약속'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구약/신약)하나님의 최후승리를 믿는 믿음이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나요?
view more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태복음 27:45~46)오늘 마태복음 본문은 주변의 분위기부터 묘사하고 있습니다.오후 12시(제육시)임에도 불구하고 온 땅에 '어둠'이 깔렸다고 말씀합니다.아모스서 5:18~20은 여호와의 심판의 날을 '어둠'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즉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하나님의 모든 심판이 쏟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무엇에 대한 '심판'입니까?바로 온 인류의 '죄'에 대한 심판입니다.죄란 무엇입니까?하나님과의 '단절'이요, 하나님에 대한 '반역'입니다.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께 무관심한 것입니다.우리의 죄를 예수님께서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구십니까?그 분은 본래 하나님이십니다.하나님과 이 세상을 함께 창조하셨고, 그동안 함께 사역하셨습니다.하나님과 친밀한 한 팀이셨으며, 동시에 한 분이셨습니다.하나님이신 그 분께서하나님을 대항하는 '죄'를 짊어지고,하나님과 철저히 분리되는 순간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셔서죄를 짊어진 예수님을 끝내 외면하시고철저한 심판을 진행하십니다.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린 이후로도지금까지 품위 있는 말씀만 하셨지만,하나님과 단절되는 이 순간 만큼은 절규를 내뱉고 계십니다.오늘 우리의 슬픔의 이유는 무엇인가요?우리는 무엇 때문에 절규하고 있습니까?간절히 바라기는,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희미해질 때,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할 때,마치 하나님과 단절된 것처럼 지내고 있을 때예수님처럼 절규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편 51:11)
view more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붙잡히실 때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마 26:56; 막14:52)그 후 예수께서 가장 사랑하는 제자였다고 자부하던 요한은아직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그 아래로 돌아왔습니다.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를 보시고 질책하지 않으시고, 다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한복음 19:26~27)남은 인생 동안 두 사람의 대화에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을 겁니다.함께 예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이미 도망쳤던 요한은 예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그러나 그는 용기를 내어 십자가 아래로 돌아갔고,그곳에서 예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예수님의 용서와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십자가 아래로 돌아가야 합니다.오늘, 십자가로 돌아가 예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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